대전예술의전당(관장 김덕규)이 개관 20주년 기념 공연으로 준비한 오페라 베르디의 ‘운명의 힘’이 무대세트가 납품이 안됐다는 이유로 공연이 취소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해 지역 망신을 시킨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연인 사이인 레오노라와 돈 알바로, 그리고 레오노라의 오빠 돈 카를로 사이에 벌어지는 사랑과 이별, 원망과 분노,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운명의 힘’은 베르디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관현악의 조화가 아름답고 극의 전개가 흥미로워 전 세계의 무대에 단골로 오르는 오페라이다.

베르디는 비극적인 작품을 많이 썼는데, 운명의 힘은 그의 오페라 중에서도 젊은 주역 세 사람이 모두 파멸하는 가장 처절한 비극이며, 서곡의 음악적 요소들이 빼어나다는 평가받고 있다.

작품의 높은 예술성으로 인해 대전예술의전당 20주년 기념공연 작품으로 선정됐고, 이번 무대는 연출가 이경재와 지휘자 지중배, 무대디자이너 정승호 무대디자이너 등이 함께해 8일부터 11일까지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4회 공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대전예당은 공연을 하루 앞둔 7일 예당 홈페이지 긴급공고를 통해 무대세트 제작업체의 납품 미준수로 인해 셋업 일정이 지연되어 공연을 취소하게됐다고 밝혔다.

대전예당은 공연을 강행할 경우 250여명의 제작진과 출연진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고 관객들에게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보일 수 없다는 판단에 공연을 취소하게 됐다며 사과와 함께 2024년 제작오페라 베르디로 공연하겠다고 공지했다.

대전예당 20주년 기념 공연으로 준비한 이 오페라에는 6억5000만원의 예산이 책정됐으며 무대제작 관련 비용으로 약 1억1500만원이 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개관한 대전예술의전당은 연간 20여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종합예술공간이자 전문 기획공연장으로 올해년은 대전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을 맞는 해다.

대전예총의 한 회원은 “대전예술의 전당은 대전은 물론 충청지역의 공연문화예술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이자, 대전시의 전폭적인 예산과 행정 지원 등을 받아 최고의 작품을 제작 공연하는 것이 당연한 기관”라며 “올해 대전지역 최고의 공연이 되어야할 개관 20주년 공연이 취소된 것은 대전예당만의 창피가 아니라 대전 문화예술계 전체에 망신살이 뻗친 것” 이라고 비판했다.

또 “민간 단체처럼 제작비를 마련하지 못해 그런 것도 아니고, 무대 제작이 늦어져 공연을 취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관계자들의 태만이 아니라면 무능이라는 지적을 피할 길이 없다”며 “이번 사태에 대해 대전시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실을 규명해 책임을 묻는 것과 동시에, 풍문으로 번지고 있는 예당 조직내의 갈등설 등에 대해서도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예술의 전당 김덕규 관장은 “걸어온 20년의 역사에서 전통의 가치를 수용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한 아이디어를 담은 콘텐츠를 개발하여,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시대를 선도하는 선진 공연장으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했지만 20주년 기념공연 조차 실패했다는 불명예를 안게됐다.

또 “과학의 도시 대전의 정체성과 인프라를 기반으로 과학자들과 창조적 영감을 공유하고 지역 예술단체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과학과 예술의 도시 ‘아티언스(Art+Science) 대전’을 구현하고, 영원히 기억에 남을 감동을 선사하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역량이 되는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