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운송이 발달하기 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혼여행지였던 대전 유성온천이 온천관광특구라는 명칭이 무색할 만큼 온천 휴양지로서의 인프라가 쇠퇴하고 있으나 당국의 부흥 대책은 공염불에 머무르고 있다. 유성 온천과 더불어 전통 온천 관광지로 이름을 날렸던 부곡과 수안보 등도 입욕 관광객이 줄어들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아 고사 위기에 직면해 업장의 폐쇄와 축소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성온천의 쇠퇴는 107년 역사를 지닌 유성관광 호텔조차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호텔을 건설사에 매각해야 했고, 지난 3월 31일 영업을 종료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내 1호 온천관광특구인 유성온천 관광특구의 쇠락 원인은 무엇이며, 다시 부활할 가능성은 없는 걸까?

107년 유성관광호텔 역사속으로

유성 온천지구를 상징하는 봉명동 소재 유성호텔은 1915년 문을 연 대전의 대표 향토 숙박업소로, 190개의 객실과 연회장, 수영장, 온천탕 등을 운영했었다.

이 호텔은 전국 각지의 시민들은 물론 고 이승만 전 대통령과 고 김종필 전 총리 등 거물 정치인들도 즐겨 찾았고,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대전 선수촌으로 지정되는 등 국제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1994년 유성온천관광특구 지정으로 ‘심야 영업 특수'를 톡톡히 누리기도 했다.

당시 전국의 모든 주점들은 자정이면 영업을 종료해야 했지만 온천특구인 유성은 예외를 적용받아 유흥 업소들이 불야성을 이루었다.

서울 강남 등 수도권과 전북 전주 등지에서 술을 마시다가 자정에 모범 택시를 대절해 유성으로 와서 2차, 3차 술자리를 이어가는 일이 비일비재 했을 만큼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유성호텔은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부터 이듬해까지 누적 37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호텔 소유주 (주)유성관광개발은 2022년 호텔 자산을 담보로 신탁회사로부터 수백억 원을 빌렸고, 그해 말 호텔 소유권을 결국 해당 신탁회사로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폐업 뒤 유성호텔은 헐리고, 해당 용지에 24층짜리 호텔 1동과 주상복합 건물 2동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유성구 관계자는 "유성호텔 부지는 유성시장 재정비 촉진 구역으로, 건축면적 최소 20%는 관광호텔로 조성해야 한다"며 "2029년부터 관광호텔업을 하겠다는 사업 승인 신청도 들어와 있다"고 설명했다.

또 "5년 정도를 기다려야겠지만 새로운 호텔이 들어설 것으로 전망돼 인근 상권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면서 "2025년까지 유성호텔 인근 온천문화공원에 온천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등 다각적인 온천지구 활성화 대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 유성관광호텔

이성계와 이방원도 다녀간 유성온천

유성온천은 예로부터 조선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이 들러 온천욕을 즐겼다고 전해질 정도로 유서 깊은 온천 명소이다.

유성 온천수의 평균 수온은 31.3도로 심신 안정과 피부질환 개선 등에 효과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온천수와 더불어 오랜 전통을 지닌 유성CC와 인접한 계룡산 동학사 등 유성온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광 자원은 전국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했다.

그 결과 유성온천 지역은 1994년 8월에는 국내 최초 온천관광특구로 지정됐는데 특구 내 온천 업소가 집중된 봉명동 온천지구는 총 93만 8854㎡(28만 4003평)에 달하며, 2018년과 2019년 온양과 부곡을 제치고 전국 온천 이용 순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도안신도시 개발 등으로 유성온천 일대의 절대 농지 등이 대규모 주거지역으로 변모하면서 유성온천관광특구는 주거관광특구 라는 비야냥을 받을 만큼 관광지에서 주거지로 변모했다.

주거환경이 개선되고 관광 트랜드가 바뀌면서 단체 관광객 위주의 온천관광은 크게 줄어들고, 코로나 사태로 결정타를 맞았다.
행정안전부의 '2022 전국 온천 현황'에 따르면 유성 온천지구 이용객은 2010년 252만 명에서 20201년 93만여 명으로 3분의 1 가까이 감소했다.

또 대전 유성구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최근 5년간 유성구를 찾은 관광객수는 2011년 935만명, 2012년 914만명, 2013년 874만명, 2014년 544만명, 2015년 536만명으로 매년 줄고 있었다.
유성지역 호텔 객실 이용률도 2019년 66%에서 2021년 54.7%로 눈에 띄게 줄었다.

유성의 호텔 등 숙박업소들은 이런 불황에 직격탄을 맞았다.

대전 지역의 향토 호텔이 문을 닫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7년에는 호텔리베라 유성이, 2018년에는 아드리아호텔 등이 잇달아 문을 닫았다.
JH 레전드호텔도 지난해 5월경부터 온천탕 운영을 잠정 중단하고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관광객 감소는 호텔업계의 경영난을 가속화해 이미 2004년 프린스호텔, 알프스호텔, 2006년 갤러리호텔이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을 신고했으며 2011년에는 홍인호텔까지 문을 닫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주상복합 건설 확대로 관광지 특성 소멸

기존 호텔 부지에는 대부분 주상복합 아파트나 주거형 오피스텔 등 주거시설이 들어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18년 폐업 후 철거한 리베라 유성호텔의 경우를 보면 이미 건축물을 철거한 후 폐허 상태로 방치하다시피 한 세월이 벌써 10년을 바라보고 있지만 새로운 건물이 올라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유성관광호텔과 마주보며 지역의 쌍벽을 이루던 리베라 유성호텔은 폐업이후 유성온천의 흉물로 지적될 만큼 지역 이미지를 실추시킨 사례이다.

▲ 족욕장

지금도 그 곳을 가기가 꺼려지는 형편인데 유성관광호텔마저 철거되면 주변의 상권이 퇴락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실정이다.

여기에 인접한 장대동 지역의 도시재개발이 진행되면 향후 이곳은 유성온천의 상징인 관광호텔 지역에서 대규모 주거 단지로 지역 특징이 바뀔 전망이다.

일부에서는현재 유성호텔보다 더 큰 규모의 신축 관광호텔이 들어오며 상권이 더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과연 바람처럼 유성을 대표할 화려한 호텔이 들어설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관광특구 내 호텔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는 것은 관광 인프라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전조이며, 호텔 폐업 도미노는 관광산업이 무너지고 있다는 실증이다.

호텔이 사라진 자리에 주상 복합아파트나 도시형 생활주택 등 주거용 건물이 대거 들어선다면 관광특구보다는 주거특구로 부르는 게 더 어울릴 것이라는 것이 지역 리더들의 푸념이다.
유성온천지구 내에 족욕체험장이 마련돼 있고 매년 유성온천문화축제가 열리지만 온천을 활용한 특색 있는 콘텐츠는 많지 않다.
유성온천을 살릴 마지막 자원으로 기대되는 유성 스파텔의 획기적인 시설 개선 및 민간 개방 확대도 건물과 부지 소유주가 국방부인 현 상황에서는 제약이 많은 실정이다.